‘메르스 다이어리’ 나는 162번 메르스 환자였다

작성 2016년 3월 16일 / 수정 2016년 3월 16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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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으로 병원에서 일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162번 환자 조모씨는 자신이 겪었던 메르스 투병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그가 38일간의 모든 기억과 사실을 적은 이유는 자신뿐만 아니라 메르스 때문에 고통받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조모씨의 허락을 받고 고통스러웠던 38일의 기록을 올립니다.

나는 162번 메르스환자였다.폐 기능이 매우 저하되어 V-V ECMO 와 tracheostomy를 통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고 급성 신부전으로 입원 내내 투석하며 보냈다. 38일간의 내 모든 기억과 사실들을 하나하나 적어본다.

 

[1 : 메르스 전쟁]

 

2015년 5월 20일,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그 후로 메르스 확진자와 의심환자가 속출한 가운데, 나와 동료들은 병원에서 환자를 검사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감기가 잘 안 걸리는 체질이었고, 걸리더라도 약을 안 먹고 금방 나았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메르스도 가볍게 여겼다.

 

메르스 환자와의 접촉으로 많은 동료가 격리 상태에 있었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Portable X-ray 촬영을 하게 되었다. 모든 병동을 돌아다니며 흉부 및 복부 X-ray 촬영을 했는데 메르스 병동은 병원이 정해준 보호복을 갖춰 입고 검사하게 되었다. 보호복은 플라스틱 얼굴 가리개와 수술용 마스크, N95 마스크, 수술용 모자,신발 커버, 수술실 가운 이었다. 레벨D 방호복은 2015년 6월 15일이후 언젠가부터 착용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6월 14일 일요일 저녁에 갑자기 몸이 이상해짐을 느꼈다. 배고파서 그런가? 잠이 부족했나? 전신에 기운이 없어지면서 내몸이 내몸이 아닌듯했다. 열은 높았을 것으로 예상되나 딱히 열감을 느끼진 않았다. 밤에 잠을 청하려 했는데 몸이 이상했는지,피곤한데도 잠은 안 오고 밤새 뒤척였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병원에서 아침밥을 먹고, 전날 몸이 이상했음을 상사에게 전했다. 혹시 모르니 바로 응급실가서 검사를 하였고 (이때까지도 난 내가 메르스인줄 몰랐다) 체열을 측정하였더니 39.3도에 달해 있었다. (이때도 딱히 열감은 느끼지 못했고 몸이 아픈 것도 없었다) 그 후 결과도 메르스 양성으로 나와 바로 입원하여 격리되었다.

 

[2 : 입원]

 

입원 후 이틀 정도까지는 기억이 난다. 병원 밥이 맛없어서 동료에게 밥이랑 과자를 사달라고 한것과 핸드폰으로 여러 사람과 연락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후론 나를 검사하기 위해 온 동료도 알아보지 못했고 기억조차 없다.얘기를 들어보니 몸은 움직였으나 멍하니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5일 정도 병동에 격리 돼있다가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난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난 꿈을 매우 자주 꾸는 편인데 보통은 하루도 안 돼서 잊어버리지만, 그때의 꿈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 병원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난 온몸이 부종으로 덮여있어서, 나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했다.얼굴도 2배로 부어있었고 에크모와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했다. 매일 몇 번씩 Portable X-ray 검사를 받았는데 나의 폐가 점점 하얗게 변해가면서 감염이 퍼지고 있었다고 했다. (폐는 공기로 가득 찼기 때문에 X-ray 사진상 검은 게 정상이다)

 

꿈 내용 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내가 혼자 격리병동에 있었는데 간호사들이 날 죽이러 달려들고 있었다. 순간순간 병동이 무서운 동굴로도 변했고 간호사들은 얼굴이 없는 괴물로 변했었다. 내 몸에 갖가지 주사를 놓았는데 다리서부터 온몸의 혈관이 점점 막혀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나는 죽는구나 생각했다. 살려 달라고 몸부림쳤었는데 현실에서도 몸부림쳤는지 모르겠다…

 

[3 : 타병원 이동]

 

7월 5일, 나는 수면상태에서 깨지는 것을 알았는데, 꿈과 현실의 중간 지점인 상태에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른다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ECMO 와 팔다리 고정기구를 풀고 이동침대로 옮겨졌다. 산소호흡기를 한체, 나를 투명한 비닐로 미라처럼 둘둘 말았다. (감염 때문이었다) 폐기능이 떨어져서 그런지 호흡기가 있어도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빠르게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고 천장에 달린 현광등이 수없이 지나갔다. 전쟁이 난 듯 주변이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그후 앰뷸런스에 실렸고 매우 빠르게 달려가는 게 느껴졌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쟁시 나는 폭발음이 수없이 들렸다. 정말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수면상태일 때 전쟁 꿈도 많이 꿨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때도 여전히 현실반 꿈반의 상태였던거 같다. (국가에서 우리 병원을 폐쇄하고 메르스 환자를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기라고 한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Tracheostomy (기관절개술) 목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으로 관을 삽입하여 환자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오랫동안 앰뷸런스가 달렸다. 어느 병원(서울대병원)에 도착했는데 한참을 기다렸던 것 같다. 다시 이동 침대로 옮기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수술실이었는지 tracheostomy의 cannula 를 통해 suction 을 했는데엄청난 양의 피가래가 나왔던거 같다. 주변의 의료진들이 매우 놀랬음을 기억한다. 그 후 난 잠들었고 깨어나 보니 음압격리병동에 있었다. 저쪽 문앞에서 간호사 한 명이 지키고 있었고 24시간 3교대 당직을 섰다. 이때부터 나의 생생한 현실이 시작되었다.

 

[4-1 : 입원중의 기억(SUCTION)]

 

눈을 떠보니 인공호흡기와 투석기를 달고 누워있었다. (팔다리 고정한채 양손에는 수액라인이 달려있다) I-J catheter를 통한 투석은 24시간 행해졌고, 채혈과 PCR 검사(객담검사)를 매일 시행했다. 또한 거의 매시간 suction 을 했는데 이게 정말 고통이었다. 가래가 계속 나와서 숨쉬기가 곤란해지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인데 suction tube 가 기도로 들어가면 구역질이 나오기 때문에 힘들다. 의식이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할 때마다 식은땀과 구역질, 기침이 종합적으로 나왔고 온몸이 몸서리쳐졌다. 입원하고 얼마 안돼서 숨을 못쉬어 죽을뻔한 적이 3번 정도 있었는데 3번 다 suction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 두 번은 cannula 자체가 막혀서이고, 마지막 한번은 아무리 suction 을 해도 SPO2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였다. 숨을 못 쉴 때의 두려움과 공포란 이로 말할 수가 없다.

 

두 번째까지는 AMBU bag 을 짜면서 cannula 를 조정하여 겨우 숨을 쉬게 됐지만 세 번째는 정말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 할 정도였다. 깊은 밤이었는데 의료진들 6~7명에서 날 살리려고 애를 썼다. suction 과 AMBU bag 은 전혀 도움이 안됐고, 호흡기를 통해 산소를 full 로 줘도 SPO2 는 60% 이하로 계속 떨어졌다. 30분가량 있었나? 마지막 수단으로 주치의가 cannula 를 뽑았고, 순간 나는 강한 기침을 하게 되었다. 그때 tracheostomy 를 통해 목구멍 크기만 한 진한 피가래가 공중으로 튀어나왔다. 다들 놀랐고 나도 놀랐다. 이제 정상적인 호흡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피가래는 cannula 직경보다 컸고 suction 이 불가할 정도로 진득했다. 이일이 처음 일어난 후부터 밤에 잠을 못잤다. 자다가 숨이 막혀 죽을것만 같았고 그 공포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퇴원하기까지 2주 동안 잠을 못 잔 것 같다)

 

잠을 못 자서인지 정신적인 문제도 동반되었다. 공포감과 격리상태, 외로움 등이 내 정신을 흐트려 놓았다.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되었고, 정말 주변에 날카로운게 하나 있었다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몸도 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을 때의 외로움이란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한다. 정말 너무 힘들었고, 이것 때문에 간호사선생님께 진상을 부린거 같다. 죄송합니다…

 

[4-2 : 입원중의 기억(KIDNEY BIOPSY, ILEUS, HEART 외…)]

 

신장의 회복상태를 검사하기 위해 Sono guided kidney biopsy 도 했다. 엎드려서 초음파를 보는 상태로 굵고 긴 바늘로 등허리를 찔러 신장의 조직을 채취 하는 시술이다. 메르스에 감염되고 나서 신장기능이 매우 떨어졌으므로 입원 내내 투석하며 살았다. 급성 신부전증이 오고 Bun/Cr 수치(신기능을 평가하는 척도)가 정상인보다 15배 정도 높았다. 다행히 회복 증세를 보이며 투석의 빈도는 떨어졌고 자연회복 될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Biopsy 후에 출혈을 막기위해 모래주머니를 등에 대고 똑바로 누워서 6시간 ABR (절대적 침대안정)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정상인도 6시간 가만히 누워있으라면 힘들텐 데, 나에게 ABR 을 유지하라니 죽을 맛이었다. 허리도 끊어질 거 같았고 그래서인지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다.

 

입원 초부터 ileus (장폐색)이 발생해서 복부에 가스가 계속 찼다. (NPO 유지의 원인이었다) 입원 내내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수액을 통해 매일같이 항생제를 투여했다. 열이 내려가지 않는 원인을 찾기 위해 I-J catheter 및 A-line, C-line 도 제거해봤다.tracheostomy 소독도 자주하고 했으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CT 및 PET CT 검사를 했으나 딱히 병변이 나오는 곳도 없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심장박동은 분당 140회로 정상인의 2배에 달했다.황달 증상까지 겹쳐 약도 먹었다. tracheostomy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여 글씨로만 내 생각을 전달했다. 정말 답답했다.

 

[4-3 : 입원중의 기억(생리작용 및 재활)]

 

소변은 소변줄을 통해 계속 빠져나갔지만, 대변이 문제였다. 난 오랫동안 NPO 상태였고 누워만 있어서 근육이 급격히 퇴화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몸무게가 10kg 이 빠졌다) 앉아 있기도 힘들었고, 걷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대변을 보러 갈수 없으므로 기저귀를 차고 지냈다.먹지를 못해 묽은 변이 나왔고, 장염과 약간의 출혈이 있어서 대변도 붉었다. 대변을 볼 때마다 간호사가 기저귀를 갈아줬는데 참 미안했다.(중환자실 간호사들 월급 많이 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조모씨가 침대에서 일어나 처음 걸은 기념으로 찍은 사진(간호사가 촬영)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쯤에 걷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처음 땅에 발이 닿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냥 주저앉았다. 도저히 다리에 힘이안들어갔다. 기가 막히고 암담했다. 보조기구를 잡고 간신히 일어나서 걷기 연습을 했는데 내 몸이 너무 답답했다. 안움직여진다. 또 주저앉을것만 같았다. 생각은 저 앞까지 걸었어야 했는데 세발자국도 가지 못했다. 다섯 발자국 가니까 숨이 찼다. 폐활량도 근력도 제로 상태였다. 며칠동안 재활을 하며 보조기구를 잡고 혼자 걷는 연습도 여러번했다. 하루가 1년 같았다.

 

대변을 화장실가서 보게 되었는데 힘이 없어서 대변 보기도 실패도 했다. 변기에 앉아있으면 몸이 빨려들어가는것 같았다.(근력 부족으로) 입원 중간에 주치의로부터 핸드폰을 받았지만, 폰조차 들 힘이 없었다. 카카오톡으로 주변 동료와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많이 와있었지만 힘들어서 답장을 잘하지 못했다.

 

[4-4 : 입원중의 기억(밥먹는 연습과 면회)]

 

많은 회복 증세를 보이면서 밥 먹는 연습도 했다. 한 달 넘게 NPO 상태였기 때문에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서 죽을 줬었는데, 입맛도 사라졌는지 먹지를 못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교수님께서 직접 나뚜르 아이스크림을 사다주셨는데 너무 맛있었다. 얼마만에 단맛을 느껴보았던가~ 감동이었다. 이후 병원 밥을 시도하려 했지만 역시나 맛이 없었고 한두숟가락 먹다가 말았다. (우리병원이든 서울대병원이든 환자의 병원 밥은 맛이 없는 게 확실했다)

 

조모씨가 부모님과 첫 면회를 하는 모습

 

밖에 나가서 사 먹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간간히 TV를 통해 먹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퇴원으로부터 5일전 쯤이었나. 교수님과 주치의한테 가족과의 면회를 애원했다. 격리병동이기때문에 안된다고 했으나 회의 끝에 허락해주셨다.

 

마치 북한가족 상봉한 것처럼 가족을 만났다. 난 접촉감염(VRE)상태라 포옹까지는 못했다. 매일 30분 정도씩 면회를 하며 살아온 얘기(?)를 했다. 이때도 아직 목이 뚫려있는 상태라 말을 잘하지 못했다. 구멍 난 곳을 거즈로 꽉 막아야 소리가 났다.

 

[5 : 퇴원]

 

나는 생각보다 퇴원을 빨리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병원을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오랜 격리 상태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몸도 잘 가누지 못했지만 퇴원을 갈구했다. 더 병원에 있으면 정말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다. 38일의 긴 입원 기간을 끝내고, 엠뷸런스를 통해 나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6 : 후유증과 현재 상태]

 

퇴원 당시에도 난 잘 걷지 못했다. 그저 집에 와서 먹고 싸고 내내 누워있기만 했다. 한 달여 만에 10 kg 이 빠졌기 때문에 몸이 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신의 피부도 다 죽어서 피부색이 까맣고 어두웠다. (썬탠의 그런 까만색이 아님) 이 글을 쓰는 지금은 90% 정도 내 피부가 돌아온 것 같다.(나름 하얀 남자였다) 살찌기 위해서 거의 매일 고기를 먹다시피했다. 처음 한 달 넘게는 입맛이 정말 없었으며 맛을 잘 느끼지 못했다.

 

현재는 예전 내 몸무게까지 도달했다.(그래서 다이어트 시작…) 폐활량은 나름 운동하여 정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천천히 더 늘려가야 할 것 같다. Lung CT 상에 있는 메르스의 흔적은 영원히 남을듯하다. 신장은 거의 회복되었고, 건강해지고 있다. (혹여나 회복이 안됐다면 평생 투석하며 살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심장은 여전히 박동이 빠르다. 그래도 140에서 90대까지 떨어지긴했다. 퇴원 후 한달이 넘어서면서 급성 탈모가 일어나서 방콕하고 있다가 요새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혹시나해서 탈모전문 병원 다니면서 1년 치료비용 거금 X백만을 부었다. 난 유전적 요인도 없는데 탈모는 큰 충격이었다. 오랫동안 질병을 앓고 영양부족에 고열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들었다.

 

대략 7개 정도의 진료과를 다니며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감염내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피부과, 내분비내과, 순환기내과, 정형외과 등 혈액 순환을 위해 마사지도 받으러 다니며 몸에 좋은 약과 음식을 먹는 중이다. (홍삼, 흑마늘 액기스, 검은콩선식, 종합비타민, 건과류 등)

 

아팠기 때문인지 건강의 소중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병원에 다니면서도 느끼지 못한 건강의 소중함이다. 더이상 아프지 말아야지!!! 추신: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의료진들께 감사합니다.

 

조모씨는 2015년 6월 1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아 입원했다가, 7월 23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186명이 감염됐고 37명이 사망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고통 받았던 메르스 사태, 소중한 가족과 건강을 잃고 아픔의 시간을 보냈던 모든 분들의 고통이 치유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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